숨김없는 말들
자립준비청년 이야기
모유진 지음ㅣ208쪽ㅣ115 X 175ㅣ2022. 8. 19.ㅣ14,800원ㅣISBN 979-11-973604-7-3
아무도 없는 삶,
그러나 너른 바다처럼 살아가는
자립준비청년 이야기
어릴 적 부모를 잃고 위탁 가정이나 쉼터에서 자라는 아이들, 자립준비청년. 만 18살이 되어 보호가 종료되면 떠나야 하는 가정과 식구들, 잠시 ‘빌려 쓰는 가족’ 틈에서 언제든 쫓겨날 수 있다는 불안과 내가 무엇을 하는지 무엇을 먹는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삶, 곁에 아무도 없는 삶을 묵묵히 살아오며 자신과 치열하게 싸워온 한 자립준비청년의 이야기이다. 때로는 상상할 수 없이 아픈 삶 그러나 꿈을 향해 나아가길 잊지 않는 여정이 펼쳐진다. 언제나 이방인으로 살아왔지만, 척박한 세상에 지지 않고, 삐뚤어지지도 않고, 모든 것을 품는 바다처럼 살아가는 한 자립준비청년의 말들을 숨김없이 담았다.
18살,
시간이 되면 아무도 없이 홀로 서야 하는 아이들
자립준비청년
보호종료아동, 혹은 자립준비청년이라 불리는 청년들이 있습니다. 어릴 적 부모를 잃고 위탁 가정이나 시설에서 자라난 아이들입니다. 이들 대부분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자랍니다. 턱없이 부족한 생리대 개수, 요청해도 바뀌지 않는 구멍 난 양말, 목이 다 늘어나고 바랜 티셔츠. 아무것도 넉넉한 건 없습니다.
마음의 결핍은 더 큽니다. 학교에서의 따돌림, 위탁 가정 식구와의 부딪힘, 어디에도 소속됨 없이 떠도는 것 같은 기분, 잠시 빌려 쓰는 가족 속에서 언제든 쫓겨날 수 있다는 불안과 내 몸과 마음이 어떤지 아무도 걱정해주지 않는 삶, 곁에 아무도 없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다 만 18살이 되면, 좋든 싫든 자라 온 곳을 떠납니다. 나라에서 주는 조금의 돈을 들고 홀로 무작정 세상에 나아가야 합니다. 이마저도 아주 최근에 여러 활동가나 시민 단체 등의 노력으로 이들의 처지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나아진 것입니다.
그러나
너른 바다처럼
저자는 어릴 적 부모를 잃은 고아이자 왕따, 성폭행 피해자입니다. 이 책, 『숨김없는 말들』에는 저자가 11살에 세상에 홀로 남겨진 뒤 겪어야 했던 사건과 아픔을 당시의 시선으로 솔직하게 담았습니다. 책 앞쪽에는 보호종료아동, 자립준비청년으로서의 삶을, 뒤쪽에는 그런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용서하는 과정을 이야기했습니다. 모든 회복은 아픔과 결핍을 그대로 인정하는 일에서 시작됩니다. 깨지고 망가져 도저히 사랑할 수 없던 자신을 인정하고 그것을 희망으로 채워가는 한 청년의 말들이 우리의 마음 한켠 지하실을 두드리고, 그 안에 숨은 진짜 ‘자신’과 만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줄 것입니다.
그럴싸한 몇 문장으로 “괜찮아”라고 하는 게 아니라 정말 ‘괜찮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한 자립준비청년의 숨김없는 삶을 통해 우리는 직접 볼 수 있습니다. ‘진짜로’ 치열한 삶을 목격하고, 우리 저마다의 결핍을 사랑으로 메우는 방법을 알아갑니다.
지은이
모유진
자립준비청년이자 이제는 그들을 돕는 활동가로도 일하고 있다. 홀로 세상을 살아가는 자립준비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아 <아라보다>, <Within Me>, <그대를 닮은 꿈> 등 음원을 발매했다. 자립준비청년을 위한 공방 카페를 준비하며 언젠가는 자립준비청년 마을을 일구어 고향이 없는 이들에게 돌아올 곳을 만들어주려는 꿈을 품고 있다.
추천사
어느 날 아버지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믿음이 좋은 것’은 다른 게 아니라 ‘내게 주어진 상황을 얼마나 잘 해석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이 시대 청년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아픔은 ‘자기 연민’이다.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쌍하고, 내가 제일 서럽고, 내가 제일 힘들다는 자기 연민에 취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이 자신을 괴롭히고, 무너지게 만든다는 걸 알면서도,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 때로는 그 감정에 취한 채 살아간다. 불행함, 무기력함, 우울함에 빠져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에게 이 책은 삶의 변곡점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자립준비청년으로 살아온 모유진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던 삶을 이 책에서 숨김없이 말하며 자기 연민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사건을 통하여 결국 현재의 ‘내’가 존재할 수 있었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때로는 불행까지도 삶이 깊이 뿌리 내릴 수 있는 법을 배웠던 시간이라 말한다. 따듯함과 부드러움으로 강인함과 우직함을 가르쳐주는 이 책을 이 시대의 청년들이 꼭 읽었으면 좋겠다.
- 최진헌. 전도사. 콘텐츠 크리에이터
목차
1 탈출
2 가족을 잠시 빌려주세요
3 불안을 다루는 방법을 잃다
4 13살 알바생
5 나로 살아가기
6 깊게 내린 뿌리
7 모유진
8 아카시아꿀과 파 뿌리
9 사랑의 리퀘스트
10 마권을 줍는 아이
11 유일한 쉼터, 나의 작은 옷장 속
12 학교보다 넓은 배움터
13 아침 기분은 몇 점인가요?
14 마음에 필요한 것
15 마음 상담
16 피해자가 살 수 있는 나라
17 알아줘서 고마워
18 완벽주의 덜어내기
19 집을 사랑하는 연습
20 마음을 회복하기 위해서
21 오늘 최고의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괜찮아
22 버스에서 기록하는 유서
23 사람들이 아닌 내가 원하는 노래
24 아라보다
25 Within Me
26 영감은 낚는 것
27 예민함이라는 특별함
28 내가 꾸는 꿈들
29 자립준비청년에게 하지 말아야 하는 이야기
30 자립준비청년 마을
31 상처가 파인 자리에 생긴 샘물
책 속에서
스무 살에, 위탁 가정에서 야반도주했다. 당시 나는 물에 젖은 종이와도 같아서 조금의 비난만 들어도 금세 찢어질 것 같았다. 위탁 가족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모두가 잠든 밤에 떠나기로 했다. 그 집에서 10년쯤 생활한 짐은 큰 가방 하나와 보따리 두 개가 전부였다. 끼익, 소리 나는 문을 숨을 참고 열었다. 발끝으로 계단을 조용히 걸어 나가 동네를 벗어날 때까지 내달렸다. 심장이 아프게 쿵쾅거렸다. 나의 청소년기가 끝나는 순간이었다.
-9~10쪽
아빠의 장례식이 끝난 뒤, 나는 우리 둘이 살던 집으로 돌아가는 대신 한 가정에 맡겨졌다. ‘위탁 가정’이라고 했다. 만 18세가 되어 자립할 때까지 보호받을 집이었다.
가족과 평생 함께 사는 입양과 달리 보호가 종료되면 떠나야 하는 가정과 식구들. 잠시 빌려 쓰는 가족. 그곳에서 나는 이방인이었다. 언제든 쫓겨나거나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자랐다.
-25쪽, 33쪽
그럴 때, 찰나의 순간에 슬픔이 밀려오고는 한다. 결핍과 외로움이 마음에 번진다.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없을 때. 진심 어린 잔소리를 해줄 사람이 곁에 없다는 걸 실감할 때. 잔소리를 듣다가 “엄마는 아무것도 몰라!”하고 토라져 보고 싶지만, 역시 그럴 수 없다는 걸 깨달을 때.그래도 괜찮다. 누구나 그렇듯, 앞으로도 결핍을 발견하는 날들이 올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그때 가면 또 생각해내면 된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나로서 살아가는 방법을.
-48쪽
어린 나이에 홀로 남겨진 내게 세상은 모르는 무언가로 가득 차 있었다. 특히 누군가와 친밀해지는 법, 의견을 조율하는 법, 사과하는 법 등 사람을 대하는 모든 방법이 내가 모르는 창고에 있는 것 같았다. 세상을 사는 법이 들어 있는 창고의 열쇠를 어디 가야 찾을 수 있는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57~58쪽
상처가 나면 아픈 게 당연하다. 상처 위에 딱지가 생기고 아물어가는 과정 동안 충분히 아파해야 한다. 그러나 이겨내라는 말, 극복하라는 말은 내가 상처 입은 상황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하도록 했다. 그건 극복이 아니었다. 제대로 아파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것일 뿐.
-106쪽
내가 왜 그랬을까. 나를 왜 지키지 못했을까. 사건 이전으로 되돌아가고 싶다. 그러나 이마저도 틀린 생각이었다. 내가 피해자가 된 이유는 밤에 돌아다녀서가 아니고, 때때로 집을 나가서도 아니고, 사람을 쉽게 믿어서가 아니고, 보호해줄 부모님이 없는 여학생이어서도 아니다. 민소매, 수영복을 입고 돌아다녔다 할지라도 범죄 피해자가 될 이유는 되지 못한다. 하지만 당시에는 “정말 아프고 힘들지?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내게 아파할 자격이 없는 줄 알았다.
누군가 목소리를 내어야 한다면, 당사자가 전하는 이야기가 힘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고아에다가 왕따, 학대, 성폭행 피해자다. 수없이 밟히고 깨어진 삶을 어떻게 극복하고 살아가는지 기록할 것이다. 나처럼 고통받는 아이들이 자신의 삶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108~112쪽
“우리는 자기 자신한테 제일 잔인한 것 같아.”
타인이 사랑해주지 않을 것 같은 내 모습을 스스로 단정 지어 지워버리는 것은 나 자신을 조금씩 잃는 행동이다. 세상에 만 명이 있다면 만 명이 좋아하는 모습이 각기 다르며, 어쨌거나 타인의 기대에 맞춰야 할 필요도 없다.
-123~124쪽
‘에이, 작곡과를 나온 것도 아닌데 내가 어떻게 노래를 만들어’ 같은 생각이 속삭일 때마다 생각한다. 나는 내가 믿는 대로 살아가게 되어 있다고. 스스로 못 할 거라 믿는다면, 나는 모든 에너지를 쏟아서 못 한다는 것을 증명해낼 것이다. 반대로 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역시 모든 에너지를 쏟아서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낼 것이다. 어떤 선택이든 에너지는 들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내게 있는 에너지를 할 수 있다고 믿는 쪽으로 쓰며 살아가고 싶다. 이런 믿음을 선택한 삶이 녹아 있는 노래를 만들고, 세상 앞에서 부르고 싶다.
-159쪽
어린 시절에 큰 사건을 겪은 뒤로 내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이 몹시 두려웠다. 그래서 유튜브 활동을 할 때도 예명을 사용했다. 초반에는 얼굴도 올리지 않고, 노래 영상만 올렸다.인생을 뒤흔들 만한 큰 사건을 겪고 나면, 아픔도 크지만 사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단단해진다. 그리고 소중한 사람들은 변함없이 내 곁에 있을 것이다.
용기를 내서 처음으로 얼굴을 드러내고 노래한 영상을 올렸다. 지레 걱정했던 일들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악플도, 비난도 없었다. 오히려 응원이 있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유튜브 채널 이름을 ‘선아라’에서 ‘모유진’으로 바꿨다. 30초도 걸리지 않는 간단한 작업이지만, 내게는 선언과도같다. 이제는 숨어 살지 않을 거다. 내 이름과 내 노래로 사람들에게 감명을 줄 거다. 그렇게 발매한 곡이 <Within Me>이다. <싱투게더>를 통해 발표한 이 노래에는 성폭행 피해자로서 살아온 이야기를 담았다.교통사고를 겪은 피해자에게 그 사실을 숨기라고 말하지 않는다. 성폭력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그 사실을 감추고 살아갈 이유가 없다. 이 노래는 내 안에 새겨진 자국조차 사랑하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깨어진 꿈의 조각들을 다시 이어 붙여볼 것이다. 여기저기 금이 가 있더라도 내 그릇을 받아들일 것이다. 나의 삶은 다른 사람들의 손에 달려 있지 않기에, 이제는 수많은 사람이 비난하더라도 나를 지키는 법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161~163쪽
자립준비청년 친구들은 위탁 가정에서 분리되는 순간부터 포기하는 법을 먼저 배운다. 먹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놀러 가고 싶은 마음. 무엇도 바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일찌감치 배운다. 그리고 조금씩 꿈꾸는 법을 잊어버린다. 먼저 자립한 선배들의 끔찍한 생활, 유흥업소에서 일하며 망가져 가는 언니, 누나들, 자립정착금을 사기당한 형들, 도박이나 불법적인 일에 휘말려 위기에 놓인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점점 불안함이 밀려온다. 나이를 한 살 먹는다는 것은 이들에게 축하받을 일이 아니다. 아무런 준비 없이 세상으로 내몰리게 되는 두려운 시기가 점점 다가오는 것이다. 퇴소가 가까워져 올수록 아이들은 생각한다.‘다음은 내 차례다.’
-188쪽
가장 중요한 것은 ‘한 사람’이다. 실제로 상처와 가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이들의 이후 삶을 조사한 결과, 그들의 삶의 방향은 주위에 말을 들어주고 믿어주는 한 사람이 있는지에 따라 극명하게 나뉘었다고 한다. 나는 나를 믿는다. 언젠가 받은 사랑과 도움을 이제 자라고 있는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나에게 찾아온 ‘한 사람’처럼 나도 그들에게 한 사람이 되어줄 것이다.
-204~206쪽
숨김없는 말들 - 자립준비청년 이야기